전공과 거리가 먼 인적자원개발론(HRD) 수업을 듣게 되었다. 당초에 생각했던 수업과는 방향이 달랐지만, 오히려 더 많은 것을 얻어가는 기회가 된 것 같다. 학기 중 기록해둔 쪽글들을 모아서 정리할 겸 글을 적는다.
훈련과 교육은 다르다
수업 첫 시간에 나온 구분이다. 훈련은 일정한 기준점에 도달하도록 하는 활동이고, 교육은 인간을 변화시키고 성장하도록 돕는 보다 포괄적인 과정이다.
처음엔 그냥 개념 정의처럼 읽혔는데, 생각할수록 그게 아니었다. 훈련받은 사람은 기준이 바뀌면 흔들린다. AI가 빠르게 발전하는 지금, 정해진 역할을 수행하도록 훈련받은 사람들이 점점 대체되는 건 이 맥락에서 자연스러운 귀결이다. 반면 스스로 생각하고 성장하는 방식으로 학습한 사람은 기준이 바뀌어도 다시 기준을 세울 수 있다.
그러면 나는 지금 훈련을 받고 있는 건가, 교육을 받고 있는 건가. 솔직히 잘 모르겠다. 아마 둘 다겠지만, 어느 쪽에 가까운지는 결국 내가 어떤 태도로 임하느냐에 달려 있는 것 같기도 하다.
HRD를 바라보는 세 가지 시선
HRD를 어떻게 바라볼 것인가에 대해 세 가지 관점이 있다. 기능주의, 해석적, 비판적 관점이다.
기능주의 관점은 조직의 경쟁우위와 성과 향상을 위해 구성원을 조직의 필요에 맞게 변화시키는 수단적 활동으로 HRD를 본다. 가장 직관적이고 현실에서 많이 쓰이는 관점이지만, 인간을 지나치게 도구화한다는 비판을 받는다.
해석적 관점은 인간의 주관성과 자기 주도성을 강조한다. 학습을 공동체적 맥락 속에서 인간이 주체적으로 의미를 부여하며 만들어가는 과정으로 보고, 무형식·우발적 학습을 핵심으로 간주한다. 인상적이었던 건 학습을 신참자에서 고참자로의 변화, 즉 정체성이 형성되는 과정으로 본다는 점이었다. 앞으로 내가 겪게 될 우발적인 경험들이 나의 정체성을 어떻게 빚어갈지, 생각해 본 적 없는 방식으로 학습을 바라보게 되는 순간이었다.
비판적 관점은 한발 더 나아간다. 학습 자체가 자본의 이익을 강화하는 기제가 될 수 있다고 본다. 처음 접했을 때는 꽤 낯선 시각이었다. 배운다는 행위가 당연히 좋은 것이라고 생각해 왔으니까. 그런데 생각해 보면 완전히 틀린 말도 아니다. 조직이 구성원을 교육하는 이유가 순수하게 그 사람의 성장을 위해서인지, 아니면 더 효율적으로 활용하기 위해서인지는 구분하기 어렵다. 어떤 학습은 사람을 성장시키는 동시에 특정 방향으로 길들이기도 한다.
어느 한 관점이 정답이라기보다, 이 세 관점이 하나의 학문 안에서 긴장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는 게 흥미로웠다. 그 긴장을 안고 가는 것이 이 분야의 특성인 것 같았다. 이상을 추구하는 학문적 관점이 '순진하다'는 비판을 받을 수 있다는 것도, 학문이 현실의 복잡성과 권력관계를 외면하면 설득력을 잃는다는 사실도 이번 내용을 통해 다시 생각하게 됐다.
성인이 배우는 방식
안드라고지(andragogy)는 성인학습이론이다. 페다고지(pedagogy)가 교수자 중심, 외적 동기 중심의 아동 교육 모델이라면, 안드라고지는 학습자 스스로 왜 배우는지를 인식하고, 자기 결정과 내적 동기를 기반으로 삶의 문제 해결에 초점을 맞춘다.
이 비교를 보면서 지금 내가 듣는 수업들을 자연스럽게 떠올렸다. 대부분은 페다고지에 가깝다. 정해진 커리큘럼, 정해진 평가 방식, 외적으로 주어진 목표. 물론 그게 나쁜 건 아니다. 하지만 그 안에서 내가 안드라고지적으로 배울 수는 있다. 왜 이걸 배우는지를 스스로 묻고, 내 삶의 문제와 연결하면서.
또 인상적이었던 건 경험학습이론이다. 구체적 경험 → 반성적 관찰 → 추상적 개념화 → 활동적 실행의 순환 과정을 통해 학습이 이루어진다는 관점이다. 어느 특정 순간을 꼽기는 어렵지만, 살면서 어떤 경험을 하고 이를 반성하며 다음 행동을 바꾸는 과정은 분명 있었을 것이다. 이론의 이름을 몰랐을 뿐, 그런 학습은 이미 일어나고 있었다는 걸 이번 내용을 통해 인식하게 됐다.
전환학습이론도 비슷한 맥락에서 읽혔다. 성인의 학습이 단순한 지식 축적을 넘어, 삶의 딜레마를 통해 기존 관점 자체를 바꾸는 질적 변화의 과정이라는 것이다. 예상치 못한 사건을 통해 기존의 생각이 흔들렸던 경험은 누구에게나 있을 것이다. 그게 학습이었다는 걸 이제야 알았다.
HRD가 인간을 도구로 보는 학문인가
솔직히 처음엔 그렇게 생각했다. 인적자원이라는 단어 자체가 인간을 자원으로 취급하는 것처럼 들렸다.
그런데 수업을 들으면서 생각이 바뀌었다. 인적자원개발에서 '자원'이란 사람 그 자체가 아니라, 사람이 보유한 지식, 기술, 능력, 태도와 같은 특정 요소를 가리킨다. 그리고 이 분야의 목적은 단순히 조직의 생산성을 높이는 것이 아니라, 개인의 성장과 사회적 가치 실현을 함께 추구하는 데 있다. 인적자원개발의 핵심 키워드는 조직, 사람, 성장이다. 그 순서가 중요한 게 아니라, 세 가지가 함께 있다는 게 중요하다.
물론 현실에서 그 균형이 항상 지켜지는 건 아닐 것이다. 하지만 적어도 이 학문이 지향하는 방향은 사람을 온전히 바라보는 것이었다. 그 점은 공감할 수 있었다.
사람을 어떻게 하면 효율적으로 배치할 수 있는지나 조직에 있어서 사람을 대하는 방법에 관한 학문이라고 생각했었다. 이 수업을 통해서 사람을 도구로 보지 않고 사람으로 보는 관점을 기르고 몰랐던 인적자원개발이라는 분야의 매력을 알아가게 되어 기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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